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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얼굴 다른 느낌.
이렇게까지 마냥 선한 혼마루는 처음이었다. 늘 적의와 살기와 분노만 마주하던 나에게
이런 신선한 기운은 몹시도 낯선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대가없는, 이유모를 호의어린 시선과 감정을 받아본게 언제적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수많은 시선들이 쏟아지는걸 뒤로하고 주인의 다리인듯한 상석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얼굴을 가린것이 참 다행이다.
표정이나 생각이 얼굴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눈치 빠른 이들, 더욱이 오랜 세월을 살아온 츠쿠모가미라면 나의 당혹스러움을 쉬이 눈치챌 수 있을것이다.
굳이 아무것도 모를 이들의 감정으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어찌되었던간에 날 괴롭힌 것은 그들의 동소체이지 여기 모여있는 남사들이 아니니까.
내가 자리에 앉자 서있던 남사들이 자리에 앉았다.
'난감하네....'
정화 사니와 일만 열심히 했지 생각해보면 정식 사니와, 그러니까 일반적인 사니와의 업무는 애석하게도 들은 바가 없었다.
그런고로 사실 굉장히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우선...자기 소개부터 해야겠지....?'
어쩐지 자기소개조차 너무 오랜만이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이름과 직업따위를 밝히는 일은 몇년 전 이후로는 해본적이 없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니와 아이라입니다. 정화 사니와로 일하다가 혼마루를 처음으로 배정받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라?주인은 새 혼마루를 배정받지 않은거니?"
히게키리의 순수한 의도의 질문이 날아왔다.
대부분이야 그렇겠지만....
"이곳의 전 주인분과 면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쪽에서도 부탁받았습니다."
"아아, 그런거구나."
히게키리는 나의 답에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저...한동안 앞으로 모든 업무는 편지로 대신할 계획입니다. 그러니 아침에 제가 머물 곳에 상자를 둘테니 거기에 하루 업무일지를 두겠습니다. 그외의 보고 역시 편지로 주시면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또 급한 일이 있거나 수리가 필요할 경우는 방울을 울리시거나 저를 부르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차차 맞춰갔으면 좋겠습니다."
필요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 아직까지 그들을 마음 편히 대할 수가 없었다.
섣부른 만남은 서로에게 상처만 입힐 뿐이다.
나야 괜찮지만 선한 사니와 밑에 있던 남사들은 나를 섭섭하거나 기분 나쁘게 생각할수 도 있을것이다.
그러니 그런 일은 미연에 방지해야 했다.
어쩐지 다들 표정이 미묘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장, 피곤할테니 일단 머물 곳을 알려줄게."
어색한 기류를 깨고 야겐이 일어섰다.
일어서서 문으로 향하는 야겐은 바라보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야겐의 뒤를 따라 몇 채의 건물을 지날때까지 우리는 말이 없었다.
"여기야, 짐은 이미 다 도착해있니까. 빠진 물건이 있으면 담당자에게 연락하면 된다고 정부의 사람이 얘기해줬어. 참, 식사는 어떻게 할래? 아무래도....대장의 상태로는 방안으로 갖다주면 될까?"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쩐지 남사들을 귀찮게 하는것 같아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다같이 식사를 하는것은 무리였다.
일단 같이 식사를 하려면 베일을 벗어야하는데 아직까지 그건 좀 힘들것 같다.
"그럼, 피곤할테니 잘 쉬도록 해."
야겐은 단도답게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어쩐지 갑자기 긴장이 풀리기 시작해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 내게 주어진 건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남사들이 지내는 공간에서는 꽤나 떨어진 건물로 독립적이었다.
건물 주변에 능소화와 장미덤불이 있어서 자연적인 울타리 역할을 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꽤 큰 방 두개와 욕실과 개인 탕이 있었다.
아무래도 전임이 신경을 써준것 같았다.
대충 파악을 끝내고 짐정리를 위해 포장된 짐들을 풀기 시작했다.
짐이 별로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정리하다보니 밑도 긑도 없이 나왔다.
한참을 짐을 정리하다보니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이 하나둘씩 나왔다.
흐릿한 기억부터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까지 다양했다.
물건을 통해 지나간 시간을 더듬으면 할 일을 끝마쳤을 때에는 이미 해가 뉘여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다.
하세베가 가져다준 저녁식사를 마치고 어설프게 정리된 방에 누웠다. 몹시 어색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공간이 이질적이었다.
혼마루를 받은것 자체가 꽤 큰, 아니 엄청난 변덕이었다.
어느 곳하나 소속된적 없는 나는 돌아갈 곳이 필요했다.
사실 이쯤되면 스스로가 외로움을 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역시 아니였나보다.
많은 생각둘이 하나둘 흐려지고 혼마루에서 첫 날이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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