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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겜/Forget me not

Hydrangea 6화

K.Sen 2017. 6. 1. 22:09

시간이 흐를 수록 혼마루의 남사들은 모두 사니와를 한번쯤 마주쳤고, 그때마다 사니와에게 작은 선물을 받았다.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날이었다. 남사들중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이 폭풍전야였음을.

 

 

 

 

 

 

 

 

그날도 아주 평화로운 일상적인 날이었고, 사니와의 편지에 따라 출진을 다녀오고, 내번일을 하고 평화로운 오후시간을 보내던 그때 사니와의 별채에서 큰 소리로 문이 닫히며 사니와가 헐레벌떡 뛰어나와 게이트 앞으로 달려갔다.

 

 

단 한번도 사니와는 뛰거나, 혹은 큰 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전례없는 사니와의 모습에 남사들은 놀랐다.

그러고는 이내 그 놀라움이 좋지 못한 기운을 품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데는

아주 조금의 시간만 필요할 뿐이었다.

 

 

그때 게이트가 작동하며 열렸다.

그 안에서 옅은 갈색의 머리칼을 가슴께까지 기른 여자 사니와가 먼저 나오고, 뒤이어 흑발을 늘어뜨린 몹시 고운 얼굴의, 중성적인 모습의 남자 사니와가 나왔다.

그 흑발을 가진 남자 사니와의 품에는 한 소녀가 안겨있었다.

붉은 빛이 도는 적갈색의 머리칼을 가진 소녀는 병색이 완연해 너무나 위태로웠다.

안겨있던채로 소녀가 고개를 돌리고 사니와를 향해 웃었다.

그 웃음조차 깨질것 같은 연약함이 있었다.

 

사니와를 언니라고 부르며 그 소녀는 천천히 남자 사니와의 품에서 내려와 사니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 위태로워 보여서 남사들은 덩달아 긴장했다.

 

 

사니와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사니와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것으로 보아 괜찮은 상태가 아니었다.

 

 

"키사 언니"

 

"......."

 

 

"언니, 왜 그래..."

 

 

"너...너...너.. 왜,...왜..이래.. 왜 말하지..않..않았어..?"

 

사니와의 목소리가 잔뜩 잠겼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듯 메인 목소리로 사니왕\는 입을 열었다.

 

 

"언니 또 울거잖아. 이렇게. 난 언니가 우는게 싫어요."

 

 

"왜 이렇게 될 때까지 날 부르지 않았어..왜...."

 

 

"언니 분명 힘들어 할거잖아요. 언니 혼마루에 정착했다고 들었는데, 언니 분명 힘들었을 거잖아요., 나 마저 걱정 끼치면 어떡해.."

 

 

"너....너..정말....."

 

 

"헤헤...언니..있지 우리 오랜만인데, 얼굴도 안보여줄거예요? 나 언니 얼굴 보고 싶어요."

 

 

 

 

작은 소녀가 사니와에게 얼굴을 보여달라 부탁하자, 아이라네 남사들은 다시 한번 긴장했다.

과연 주인이 저들의 앞에서 얼굴을 드러낼 것인가?

 

 

잠시 멈칫하던 사니와는 서서히 손을 들어 얼굴에 쓴 천을 벗겨내었다.

풍성하게 묶은 머리채가 드러나고, 하얗고 갸름한 턱끝이, 분홍빛 입술이, 고운 코가, 마지막으로 짙푸른 눈이 드러났다.

 

 

미카즈키가 말한대로 밤하늘 밑의 수국정원을 빼다박은 듯한 모습에 남사들은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역시 언니는 변함이 멋네요. 여전히 예뻐요."

 

눈을 곱게 휘며 웃는 아이의 말에 사니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카네....."

 

 

"언니, 혼마루 보여주세요. 언니가 머무를 곳이잖아요. 언니가 쉴 곳이 보고싶어요."

 

 

아이가 웃자 사니와는 아카네라고 부른 소녀를 안아들었다.

 

 

"깃털같구나."

 

 

"에이, 깃털보다는 아직 무거워요."

 

 

"아카네, 그럼 네 혼마루는...."

 

 

"아아, 내가 맡기로 했다."

 

그림같이 서있던 흑발의 남자 사니와가 답을 했다.

 

"스승님이요?"

 

사니와는 그 흑발의 사니와를 스승이라고 불렀다.

처음 드러나는 제 주인의 인간관계에 남사들은 안그런척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고선 왠지 끼어들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에 그들은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그래, 내 손으로 거둔 아이의 부탁인데 들어줘야지."

 

"이제 우리도 다 정착하네요. 그럴 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이제 우리도 쉴 때가 되었잖니."

 

 

"아, 언니네는 호쵸가 있네요?저는 아직 안왔는데."

 

 

사니와의 품에 안긴채로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던 아카네는 연못가에 서있는 호쵸가 보이자 웃으며 사니와에게 얘기를 했다.

덕분에 시선이 자기에게로 쏠리자 당황한 호쵸가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전임이 열심히 키워놨지. 다들 좋은 남사들이야."

 

 

남사들은 사니와의 입에서 '좋은 남사'라는 말이 나오자 꽤나 당황했지만

이내 가슴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니와는 아카네를 안은채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니와는 아카네를 꼭 껴안은 채로 혼마루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 단풍잎을 닮은 아이는 끊임없이 사니와에게 재잘댔다.

그런 사니와의 뒤를 갈색머리 사니와와 흑발의 사니와가 조용히 따라갔다.

예의가 아닌것을 알지만 그래도 처음 보는 사니와의 지인과 사니와의 얼굴에 호기심이 동한 남사들이 안그런척 사니와가 가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혼마루에 가장 안쪽에 있는 사니와의 별채로 가는 도중 아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사실...언니 많이 보고 싶었어요."

 

"레이님도, 아무 언니도 다 보고 싶었어요."

 

"사실 그때, 나 처음 구해줬을때, 나는 천사르 본지 알았아요."

 

"왜냐하면 둘다 너무너무 예뻤거든요."

 

"근데...그런 사람들이 날 사랑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하지만..나 계속..계속..있고 싶었는데....나는....난..안되나봐요..."

 

 

소녀의 목소리가 점점 물기에 젖어갔다.

이미 사니와의 뒤에 가던 연갈색 머리칼의 사니와는 손에 얼굴을 묻고 소리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레이라 불린 그 남자도, 고개를 옆으로 돌렸지만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도...세 사람처럼 되고 싶었어요. 강하고, 멋지게. 나도..누군가를 구해줄 수 있게....근데 나 그렇게는 될 수 없나봐...언니랑, 아무 언니랑, 레이님은 너무 멋진걸..."

 

 

"또 허튼 소리. 넌 내가 직접 거둔 아이다."

 

아이의 억지로 미소짓는 소리에 레이라 불린 흑발의 남자 사니와가 아카네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카네, 널 내가 길렀어. 그 순간부터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 그 곳에서 널 구한 그 이후로부터. 하지만, 내가 엉망이라서, 나도 멀쩡하지 못해서 너한테 더 신경을 써줄 수 없었어. 그게....그게 제일 미안해..."

 

 

"나 모두가 너무너무 좋아요...내 혼마루도..언니도..레이도..아무 언니도.. 모두 좋아..나..더...흑..근데..나..남고 싶어...다같이 더 있고싶단 말이야!!"

 

 

아카네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소리치듯 뱉어내는 아이의 발버둥에 아이를 끌어안은 사니와의 팔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한참을 서럽게 울던 아이는 더이상 울 기력도 없는지 얇은 어깨만 떨리고 있었다.

 

 

 

"연은 늘 소중해. 널 늘 사랑했고 아꼈고, 날 좋아해줘서 고마웠어. 언니가 아무나하고 연 안맺는거 알지?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그때도 언니가 꼭 만나러 갈게..."

 

 

사니와 역시 목이 메이는지 천천히 아이에게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보지 못했지만, 사니와의 표정은 슬픔을 꾹꾹 눌러담은 얼굴이었다.

서러움에 우는 아이만큼 울고싶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사니와는 울지 않았다.

 

 

"언니..나...나 꼭 기억해줘요..나 잊지 말아주세요..."

 

"응...꼭 기억하게...그럼..당연하고말고..."

 

눈이 발개진채로, 눈꼬리에 눈물을 매단 채로 아카네라는 아이는 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니와도, 남사들도, 사니와의 지인도 모두가 직감했다.

아이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언니...나 졸려요....."

 

"그래...."

 

"아무 언니..나 졸려요..어떡해..나 아직 안..자고 싶은데...."

 

"쉬잇, 착한 아이는 자는거야. 그러면 내일이 피곤해져요."

 

"레이님..저 졸려요...."

 

"예나 지금이나 잠이 많은 아이구나."

 

 

아이는 가물가물한 눈을 간신히 뜨며 제 지인들에게 잠투정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잠투정이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아이의 숨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사니와는 아이의 등을 가만가만 토닥여 주고 있었다.

 

점점 아이의 숨이 옅어지고, 눈을 깜빡이는 것이 느려졌다.

 

 

그렇게 아이는 자신을 구해준 이의 품에서 영원히 깨지 않을 잠에 빠져들었다.

 

 

 

 

 

소녀의 눈이 감기자마자, 뒤에서 소리 없이 흐느끼던 연갈색 머리칼의 사니와가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참고 참았던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사니와는 그저 잠이 들어버린, 작은 새같은 아이를 끌어안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 광경에 마음 여린 단도들은 물론이고, 남사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아카네의 장례식은 그녀의 혼마루에서 치러졌다.

사니와는 장례식을 치르고 오겠다며 남사들에게 말한 후 3일동안 혼마루에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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